[인터뷰: 소통] 조병훈 폴리모프 대표① "무모했던 게임개발이 증명한 창조의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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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계에는 1,300만이라는 <서울의봄>이 왔지만 아직 많은 곳이 겨울이다. 다른 나라도 그렇듯 콘텐츠사업에 종사하는 모든 이들의 삶은 녹녹치 않다.
그중 게임사업은 전형적인 하이리스크-하이리턴이기에 살얼음판을 걷듯 조심스럽다. 실패했을 때 후폭풍은 담당자들의 자리는 물론 회사의 존재에도 영향을 준다.
그래서 '대표의 결단' 같은 단어를 보기 어렵다. 적게는 수십 명, 많게는 만 명이 넘는 이들의 생계를 책임지는 상황에서 무모한 도전을 선택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도 봄이 오길 바라는 마음에 호미를 꺼내 언 땅을 파는 농부처럼 무언가는 해야 한다. 천천히 무너지는 것보다는 가치 있는 노력에 미래를 걸어보는 것이다.
"공허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신과함께>나 <스위트홈> 등 굵직한 여러 작품에 참여해 VFX와 3D어셋을 공급하는 과정은 즐거웠지만 그 안에는 우리의 ‘창조’는 없었던 거죠. 감독의 생각에 맞춰야 하는 구조니깐요. 점점 자유로운 창작에 대한 갈망은 고파만 지더군요."
보슬보슬 눈이 내리던 어느 날. 아기자기한 소품과 비싸 보이는 전문기기들, 그 안에 부지런히 움직이는 직원들 사이로 조병훈 폴리모프 대표를 만났다. 선뜻 보기에도 제법 젊은 얼굴에 넋을 놓고 있다가 흠칫 놀라 명함부터 건넸다.
2020년 9월 8일 만들어진 폴리모프의 연혁은 대표의 얼굴처럼 젊었지만 내공은 초절정 고수였다. 영화 <백두산>과 <사자>, <승리호>, <정이>, <콘트리트 유토피아> 등을 비롯해 <지옥>, <고요의바다>, <환혼>, <아일랜드>, <종이의집>, <스위트홈> 시즌2, <경성크리처> 등 <킬러들의쇼핑몰>, <무빙> 등 티빙, 넷플릭스, 디즈니플러스 유명 작품에 VFX와 3D어셋 등 후반작업을 진행했다.
일찍부터 관련업에 종사했던 조 대표의 실력과 경험이 만든 결과였다. 대표의 소탈한 모습에 저런 경험이 있을 거라고 상상하지 못했으리라. 더 재미있는 건 인터뷰 주제가 조 대표의 무쌍급 활약상이 담긴 영화, 드라마가 아닌 게임판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조 대표와의 <이프선셋> 개발 관련 '인터뷰: 소통'이 시작됐다.
조병훈 대표가 개발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VFX에서는 초절정 고수였던 그가 게임개발을 택한 건 창조에 대한 갈망 때문이었다. 자신만의 이야기, 생각, 감정을 나누고 싶어했다.
*창조에 대한 갈망, "우리만의 것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위에 언급한 작품들만 해도 하루 24시간, 1년 365일이 모자랄 것 같았다. 지금도 계속 새로운 작품 요청이 들어오고 있을 텐데, 어떻게 게임을, 그것도 세계를 강타한 인기장르 '서바이벌크래프팅'으로 개발하게 됐을까."우리만의 것을 만들자는 생각은 코로나 때 고민했던 것 같습니다. 넷플릭스를 필두로 OTT가 코로나대유행에 맞춰 상승세를 탔고 저희도 자연스럽게 다양한 작품에 이름을 올릴 수 있었죠. 지금도 너무 좋아하는 일이지만 그땐 모두 삶의 공허함을 느꼈잖아요. 무기력해지고요. 생각을 바꾸기로 했던 것 같습니다. 우리만의 것을 만드는 걸 해보자. 무턱대고 그렇게 시작한 거죠."
자금은 본업으로 부지런히 마련했다. 2년 동안 노트와 머릿속에 있던 걸 꺼낼 시간이 온 것이다. 조 대표는 함께 창업한 동료와 언리얼엔진 공부, 경험이라고 생각하고 게임을 제작하자고 했다. 답은 흔쾌히 '해보자'로 돌아왔다. 그렇게 폴리모프의 첫 게임이 출항을 알렸다.
"본업 때문에 주말에 짬을 내 둘이서 개발했는데 상황이 바뀌어 월·화·수에는 본업을, 목·금·토에는 게임개발을 하는 식으로 스케줄을 조절했습니다. 그땐 막연했던 것 같아요. 이렇게 몇 년 개발하면 개발을 완료할 수 있을 거라고 봤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무리한 생각이었지만요."
시작부터 난관에 봉착했다. 그래픽은 워낙 자신했던 분야라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영화와 드라마시장에서는 언리얼엔진을 이용한 후반작업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던 시기였다. 가진 걸 넣는 건 쉬웠지만 게임처럼 조작하고 구동하는 일은 완전히 다른 작업이었다. 이런 상황에선 대부분 포기를 떠올릴텐데 조 대표는 결단을 내렸다. 밀어붙이기로.
"기필코 완성하고 싶었어요. 정예요원 셋으로 게임개발팀을 차렸고 언리얼엔진 도서를 구입해 처음부터 배운다는 마음으로 진행했습니다. 인력 구하는 일도 쉽지 않아 내부에서 해결해야 했어요. 기능 하나 구현하려 밤새 책을 뒤지는 게 비일비재했습니다."
'기능 하나 구현'의 대표적인 건 구르기다. 게임 개발을 해본 사람은 구르기 동작구현이 얼마나 어려운지 안다. 이동이라는 단순함과 달리 변수가 많고, 의외로 계산해야 하는 요소, 거리, 착지, 동작 모든 게 복잡하다. 조 대표는 구르기를 언급할 때 미간을 찌푸렸다.
"너무 힘들었어요. 간단한 화면 하나 만드는 것도 일이었는데 꼭 필요하다고 해서 넣으려는 구르기는 좀처럼 구현되지 않더군요. 책과 사이트를 뒤져가며 어떻게 든 풀어내려고 했죠. 모두가 짜증을 내던 상황이었어요. 그렇게 한 달 내내 구르기만 연구해 완성했을 땐 모든 직원이 환호성을 질렀을 정도였습니다."
힘들어하던 직원을 독려했던 건 사훈 '불가능한 건 없다' 였다. 조 대표도 그랬다. 스스로가 매일같이 되새겼던 말이었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인간적으로 느끼는 미안함과 속상함도 컸다.
"게임제작은 정말 매일 매시간 안 되는 것과 싸우는 일로 가득했죠. 너무 많아 이걸 깨부수고 전진하는 게 쉽진 않았습니다. 스스로 버티고 성장했던 직원들의 모습을 보면 대견해요. 그러나 마음 한 구석에는 넘어서는 고통을 바라보는 게 힘들었습니다. 저도 모르게 포기라는 걸 떠올린 거죠. 그땐 마음을 다잡는 게 힘들었어요."
불가능을 없앤 직원들은 옥신각신하면서 서로를 보듬었고 자연스럽게 합이 맞아떨어지기 시작했다. 조 대표의 생각과 노력대로 직원들이 성장한 것이다. 3년 차 조 대표도 한층 발전했다. 지금은 뭔가 원하는 게 있으면 금방 이루어지는 수준이 됐다고.
"물론 해소되지 않는 부분이 그때에도 많았습니다. 가장 큰 건 내부에 게임개발자가 한 명도 없었다는 점이죠. 아티스트와 개발자의 생각과 판단은 다릅니다. 노력해도 경력직 개발자가 이곳에 올리 만무했기에 스스로가 개발자가 될 수 있도록 생각의 전환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개발하는 과정, 전체를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겜만남 유튜브 채널에는 〈이프선셋〉 개발 과정의 모든 걸 만날 수 있다.
*개발과정을 담은 영상들, 소통의 시작 <겜만남>
조 대표는 회의실 커다란 모니터로 유튜브채널 하나를 보여줬다. <겜만남(GameMaker)>이었다. 이곳에는 개발 초기단계부터 현재까지의 상황을 개발자들이 만들어 올린 영상이 가득했다. 그 전설적인 '구르기' 영상도 있었다.
"포기하지 말자는 일종의 주문 같은 거였죠. 게임개발도 하는데 유튜브채널 운영 하나 못할까 싶었습니다. 3년 전 올린 첫 영상은 1분 41초의 짧은 내용이었지만 지금을 만든 소중한 영상이 아닐까 싶습니다. 저희가 개발하던 모든 상황이 영상으로 올라가게 됐습니다."
인터뷰가 끝난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영상이 올라왔다. 개발일지였다. 영상작업을 전문으로 하는 곳 답게 수준이 뛰어났다. 거기에 특유의 개그가 있는데 이건 나중에 꼭 따로 보시길 추천 드린다. 언리얼엔진으로 개발하는 초보 분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정보가 많다.
개발팀 인원은 조금씩 늘어났다. 본업이 줄어들자 다른 아티스트들을 개발에 참여시켰다. 프로젝트가 중반을 넘어설 땐 6명, 체험판을 냈을 땐 8명이었다. 지금도 비슷한 수의 개발자가 프로젝트를 맡고 있다.
"1년이 좀 넘는 기간이었던 것 같아요. 개발선언은 3년 전이었지만 실질적인 개발은 1년이라는 기간에 이루어졌습니다. 어셋이 아닌 조작할 수 있는 게임이 만들어진 과정은 짧고 강렬했죠. 그렇게 <이프선셋>이라는 게임을 낼 수 있었습니다. 포기하지 않아서 누릴 수 있는 짜릿한 경험이었죠."
그렇게 스마일게이트 스토브로 첫 게임 <이프선셋>이 세상에 나왔다. 《계속》
출처 : 글로벌E(https://www.globale.co.kr)